우울증은 앞선 글 [우울증의 원인은? 정말 마음의 병일까?]에 설명했다시피 단순히 마음이 약해졌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유전적으로 결정된 생물학적 상태와 기질, 아동기 발달 과정에서 환경적 요인들로 인한 생물학적, 정신적 상태가 최근 스트레스와 상호작용하여 발병하게 됩니다. 병적인 생물학적 변화는 약물치료로 해결이 되겠지만,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보듬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생각, 감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심리에 따라 같은 '우울감'을 표현하더라도 질적으로 다른 우울증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울증에 대한 심리를 정신역동(psychodynamic)적 관점에서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과거에 우울증은 사랑했던 대상의 상실 후 발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우울증 환자들이 호소하는 감정은 대체로 우울감, 죄책감이었습니다. Freud는 우울증 환자들이 상실한 대상과 내부의 '나'를 동일하게 취급하고, 이때 떠나간 대상에 대한 분노가 동일하게 취급된 '나'에게 향함으로써 우울감이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죄책감은 떠나간 대상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는 '나'에 대한 초자아(양심) 때문에 유발된다고 하였습니다.
Bibling은 대상의 상실이 아니더라도 우울증이 생긴다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이러한 발견을 토대로 사람은 세 가지 열망을 가지고 있고(가치 있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 강하고 우세한 사람이 되는 것, 선하고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는 것), 이 기준에 '나'(자아)가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우울한 감정이 생긴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자기애적 취약성(narcissistic vulnerability)이 우울증 발생의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두 가지 외에 우울증의 심리적 원인을 설명하는 몇 가지 정신분석적인 이론이 더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기애적인 취약성, 약한 자존심, 내부로 향하는 분노와 공격성을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 정신역동적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분석적 이론을 토대로 Blatt은 우울증 환자의 집단이 정신역동적으로 크게 두 가지 집단으로 나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 의존형(anaclitic type): 이들은 보호받고, 사랑받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대인관계가 망가지는 것에 대해 특히 취약하고, 버려지고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두려움과 관련되어 있는 무력감(helplessness), 외로움(loneliness), 허약함(weakness) 등이 특징적인 감정으로 드러납니다.
2. 내사형(introjective type):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발달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친밀한 대인관계는 부차적 요소입니다. 따라서 완벽주의적인 편이고, 경쟁적이며 일이나 학업 등에서 목적 달성에 대한 욕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실패했을 때 특히 취약하고, 무가치함(worthlessness), 죄책감(guiltiness) 등이 특징적인 감정으로 드러납니다.
우울증 환자들은 각자 다른 형태의 우울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병의 원인에 맞게 약을 복용하듯, 우울증 환자들과 대화를 할 때는 각자만의 기저 우울 역동을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내사형 우울증 환자들에게 "많은 사람을 만나봐"처럼 대인관계에 초점을 맞춘 조언은 큰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치료자뿐만 아니라 가족, 지인들은 우울증 환자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그들을 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Glen O. Gabbard의 역동정신의학, 제5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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